" 생일 축하는 고난의 삶을 살아온 인류가 고안해 낸 , 생의 실존적 부조리를 잠시 잊고, 네 주변에 너와 같은 문제를 겪는 이들이 있음을 잊지 말 것을 부드럽게 환기하는 의식이 아닌가 싶다. 괴로움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동료들이 주는 이런 의례마저 없다면 삶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로 시작된 사건이라는 우울한 진실을 외면하기 어렵다. " p.31
"어느 날 아버지는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이 정전기에 반응한다며 정전기를 이용한 청소도구를 특허 내면 성공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일론 천에서 발생하는 정전기로 먼지와 머리카락을 청소하는 시범도 보였다. 나는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그런 게 가능하면 왜 세계적인 기업들이 벌써 안 만들었겠냐고 일소에 부쳤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3M에서 아버지가 만들려고 했던 바로 그 정전기 청소포를 출시했고, 나도 열렬한 사용자 중 하나인데, 그걸 쓸 때마다 몸을 쪼그려 방바닥에서 유심히 머리카락을 집어 올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 p.34-5
"'회계원리' 첫 수업에서 '회계는 경영의 언어'라는 말을 들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언어는 문학의 언어였다. 그 언어는 모호하다. 이것을 말하면서 동시에 저것을 말하고, 저것을 말하면서 이것을 말한다. 따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언어이며, 사람에 따라 무한히 다르게 해석된다. 회계가 그랬다가는 큰일이 날 것이다. 그런데 문학은 그래도 된다. 그래서 좋았다. " p.48
"언젠가 내가 하루 동안 하는 활동을 빠짐없이 적어본 적이 있었는데 서른 가지가 넘었다. 소설을 쓰다가, 책을 읽다가, 머핀을 굽다가, 커피를 내리다가, 뉴스를 보다가, 잡초를 뽑다가, 요리를 하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운동을 하다가, 산문을 쓰다가, 이메일을 보내다가, 그림을 그리다가, 구상을 하다가, 아까 쓰던 글을 고치다가, 차를 마시다가, 운전을 하다가, 쇼핑을 하다가, 또 새로운 글을 쓰다가, 운동을 하다가, 산책을 하다가, 우체국에 갔다가, 장을 보다가, 영화를 보다가, 다가, 다가, 다가... 가 계속 이어졌다. " p. 70
"신은 나에게 집중력을 주지는 않으셨지만 대신 태평한 마음을 주셨던 것 같다. 지금은 이래도 오 년, 십 년이 지나면 그럭저럭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마음, 나에게는 그 마음이 있었고, 참으로 다행하게도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를 때까지 참고 기다려준 사람들이 내 곁에 있었다. 문청 시절의 어설픈 습작 소설을 읽고 평해준 친구가 있었고, 실패한 요리를 참고 먹어준 아내가 있었고, 못 그린 그림도 "특이하다, 계속 그려보라"며 격려해 준 만화가 친구도 있었다" p.71
"어쩌면 우리는 모임을 떠난 사람들이 불행하기를 내심 바라는 지도 모른다. 자기는 어떻게든 버티며 남아 있는데 떠난 사람들이 행복하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떠난 사람들은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애써 불행을 연기해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떠나는 사람들의 행복과 행운을 빌어주는 영화 장면이 늘 감동적인 것은 그게 쉽지 않아서일 것이다." p.120
"떠난 사람은 루저가 아니라 그냥 떠난 사람일 뿐이다. 남아 있는 사람도 위너가 아니라 그냥 남아 있는 사람일 뿐이다."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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